불교의 지장보살의 서원誓願과 생명평화 生命平和 네이버 블로그_2
불교의 지장보살의 서원誓願과 생명평화 生命平和 : 네이버 블로그
이것은 구제해야 할 대상이 내 마음 밖에 실재하는 대상으로서 중생이 있다든가, 끊어야 할 번뇌가 있다든가, 배워야 할 법문이 있다든가, 이루어야 할 불도가 있다고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중생은 자성중생이고, 번뇌는 자성번뇌이고, 법문은 자성법문이고, 불도는 자성불도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것이지요. 사홍서원(四弘誓願)은 보살(菩薩)의 공통된 네 가지 큰 서원을 말하며 불자로서의 삶인 보살이 닦고 수행 실천해야 하는 보살도(菩薩道)의 실천을 통해 행복과 해탈을 이루는 데 있습니다. 모든 보살이 번뇌가 다한 열반에 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뇌의 바다인 중생계에 길이길이 머물고자 서원하는 것은 중생과 보살이 둘이 아니라는 공(空)과 무아(無我)의 철저한 인식에 기인하는 것이다. “부처님, 보살님, 스승님들이시여, 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나오는 저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과거세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부처님의 자손이 되는 여러 단계의 수행을 거쳐 진정한 보리심을 성취하셨던 것처럼 저 또한 모든 존재들을 위해 보리심을 일으키겠습니다.” 14) 보살은 셀 수도 없는 영겁동안 윤회세계에 머무르고 있으니 미혹한 생각들을 버리고 해탈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그릇된 생각을 하는 행위.
만약 뿌리가 되는 이 서원 중 어떤 것이라도 깨진다면 모든 서원이 깨지는 것이며, 가능한 빨리 서원을 다시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불상 앞에서 당신의 스승을 관상하고 보살의 기도문을 반복함으로써 그것들을 다시 마음에 새겨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현보살의 이러한 서원은 단순히 외적인 보호뿐 아니라, 내면의 번뇌와 장애로부터도 법사를 지켜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진리를 향한 굳건한 마음을 가질 때, 보현보살의 지혜와 실천력이 우리를 도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깨달음의 길을 순조롭게 걸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임을 시사합니다. 보현보살은 실천과 행동의 보살로서, 『법화경』의 지혜를 현실 세계에서 구현하는 힘을 보여줍니다. 45) 상황에 따라 필요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이 그 악행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막지 않는 행위.
혹은 수행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라도 무례한 행동을 일삼는다면, 그들의 믿음을 잃게 하는 행위가 됩니다. 지장보살(地藏普薩) 에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고 한다.삭발한 머리에 석장을 짚고 여의주를 들고 지옥문 앞에 서있다. 불교에서 모든 중생들이 성불할 때까지 “나는 성불하지 않겠다”라는 지장보살의 서원은 인류 문헌 표현으로 최고 위대한 선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註 만일 내가 성불할 경우, 다른 국토의 보살이 나의 이름을 듣고도 보리심(菩提心)에서 물러서는 자가 있다면 나는 결코 정각을 이루지 않겠습니다. 註 만일 내가 성불한다면 그 국토에 사는 중생들은 필요한 의복이 생각만하면 이르러 올 것입니다. 註 만일 내가 성불한다면, 시방 세계의 중생들이 나의 광명에 덮일 것이며, 빛을 받은 자들은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울 것입니다.
육도(六途)의 중생과 함께 나서 중생을 교화하며 그들이 보리심을 내게 한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맹세인 공양이나 존경을 받고자 하는 집착 때문에 자신의 행위를 칭찬하고, 다른 이들을 흠잡고 얕보는 행위를 저지르고 나서 “나의 공덕을 자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라고 생각하는 것 등입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행동에 대해 참회한다면, 죄악은 완전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공을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했음에도, 다른 이들에게 “공에 대해 명상하면, 나처럼 될 수 있으며, 즉각 공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라고 가르치는 행위. 만약 다른 이들이 당신은 공을 깨달았다고 믿게 된다면 이것은 큰 죄악이 될 것입니다. 산업화되면서 물질의 풍요는 생명 존엄 사상이 박약(薄弱) 해지고 있다.
- 스승은 못된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벌을 주거나 징계를 내릴 수 있습니다.
- 14) 보살은 셀 수도 없는 영겁동안 윤회세계에 머무르고 있으니 미혹한 생각들을 버리고 해탈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그릇된 생각을 하는 행위.
- 공양을 올리는 사람이 풍족하지 않음을 알고 자비의 마음으로 선물을 받지 않는 것은 죄악이 아닙니다.
- 註 만일 내가 성불하는 국토에 사는 유정(有情)들이 만일 모두 동일한 순금빛이 아니라면 나는 결코 정각을 이루지 않겠습니다.
- 註 만일 내가 성불한다면 그 국토에 사는 중생들은 필요한 의복이 생각만하면 이르러 올 것입니다.
40) 해치려는 의도나 게으름 때문에 소중한 이와 이별하고 재산을 잃게 되어 비탄에 빠진 자를 위로하지 않는 행위. 39) 분노나 게으름 때문에 당신을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도와준 사람의 친절한 행위에 보답하지 않는 행위. 2) 더 많은 것을 축적하고 모으려는 욕망 때문에 당신이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 탐욕을 없애려고 노력하지 않는 행위. 예를 들어 계본을 잘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 신, 구, 의 삼업이 자동적으로 가라앉아 고요하게 되는 것에 의해 보리심을 수행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라고 말하는 것. 만약 그 수행자가 당신의 말로 인해 자신의 서약을 버리게 된다면, 당신은 아주 큰 죄악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법화경』은 우리에게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와, 자비와 지혜를 실천하는 보살행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 경전의 가르침이 도반님의 삶 속에서 영원한 등불이 되기를 진심으로 발원합니다. ④ 다르마가 아닐 수도 있는(실제로는 다르마와 관련이 있을 수 있는) 일을 해 달라고 부탁 받았을 때 하지 않는 행위. 18) “나는 모든 존재들을 도울 수 없어.” 혹은 “나는 특정한 어떤 이를 돕지 않겠다.”라고 생각하며 보리심을 포기하는 행위.
곧 이것이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이고, 만행의 근본이며, 신령한 깨달음의 근원이다. 이로써 모든 마하살大士이 홍서(弘誓)로 말미암아 영겁에 깨달음의 원인이 되는 행을 닦고, 시방의 위대한 성인이 이 네 가지 원을 연하여 항상 생사에 머무르며 중생을 널리 제도하여 영겁토록 멸하지 않는다. 44) 학식이 높고 깨달은 바가 수승한 이의 공덕을 기뻐하고 함께 수희찬탄 하지 않는 행위. 42) 증오나 게으름 때문에 당신의 제자나 수행원의 행복을 위하여 가르침을 주지 않고, 필요한 물건을 베풀지 않는 행위. 28) 대승의 길을 가겠다고 서원하고, 대승불교를 공부할 능력과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승의 교리와 수행을 배우지 않는 행위.
이 네 가지를 모두 ‘홍서원(弘誓願)’이라 함은, 넓은 연(緣) 혹은 많은 대상을 일러 ‘홍’이라 하고, 스스로 마음을 제어함을 일러 ‘서’라 하고, 뜻이 만족되기를 구하므로 ‘원’이라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 경전에 설해져있는 사홍서원은 우리가 지금 행하고 있는 ‘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진서원단, 법문무량서원학, 불도무상서원성’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37) 분노, 게으름, 혹은 무시함 때문에 고통을 소멸시키는 것을 돕지 않고 피하는 행위. 31) 경전에 쓰여진 방식과 주제의 내용, 다른 존재들을 돕기 위한 능력 등이 형편없다며, 대승의 가르침, 스승, 혹은 주제 등에 대해 비방, 비난의 말을 하는 행위. 당신은 잘못된 견해에 대해 논박하기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닌 것들을 공부하는 것이며, 그것들에 빠져들면 안 됩니다. 29)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공부하여 결과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멀리하게 되는 행위.
문수를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깨끗한 행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하거나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당신을 해치고 있는 그 존재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수행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보리심을 저버리게 됩니다. 다섯째는,만약 어떤 중생이 저를 천대하고 박대하거나, 저를 대해서 부끄러워 하거나, 저를 공경하거나 공경하지 않거나, 저를 필요하게 여기거나 필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저를 보거나 저를 보지 않아도 이들모두가 저와의 인연으로 보리심을 내게 하는 것입니다. 넷째는,만약 저를 어떤 중생이 업신여기거나, 저를 의심하거나, 저를 압박하거나, 저를 속이거나, 삼보(三寶)를 비방하거나, 어진 이를 미워하거나, 여러 사람을 업신여기고, 착하지 않은 마음을 내어도 이들 모두가 저와의 인연으로 보리심을 내게 하는 것입니다. 불교명언 / 생활불교 / 법구경 / 불교설화 / 불자라면 누구나 쉽게 가입하고 글을 올리며 불교 포교를 위해 자비행을 실천하는 밴드입니다. 스팸 게시물이 확대 생성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문구 및 사용 제한기간을상세하게 안내해 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모두가 행복한 인터넷문화를 만들기 위한 네이버의 노력이오니 회원님의 양해와 협조 부탁드립니다.
세 번째 이야기: 『법화경』의 공덕과 보현보살의 권고
1) 매일 불법승 삼보에 대해 당신의 몸과 말과 마음을 모아 오체투지를 하고, 공덕을 찬탄하고, 그것의 성품에 대해 명상하는 것으로 공양을 올리지 않는 행위. 7) 수행자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그들의 의복을 훔치고, 그들로 하여금 보살의 서원을 깨뜨리게 하는 행위. 6) 성문, 연각, 보살의 세 가지 수행이나 경전의 내용을 비난하여 성스러운 법을 경멸하거나 저버리는 행위. 당신은 생명 있는 모든 존재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였으므로 보리심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주 무거운 악업이 될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무리 오랜 세월이 걸리는 것처럼 보인다할지라도 절대로 낙심하거나 좌절하면 안됩니다.
절망감에 빠지기 보다는 보리심을 간구하는 다음의 기도문을 읽어 당신의 서원에 새로운 힘을 주십시오. 불자들은 사홍서원을 세우고 그 서원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며 불가능하더라도 그것이야말로 보살의 길이기 때문에 이들 원을 실천 수행해야 합니다. 불교에서 부처, 보살이 중생(衆生)을 구제하고자 하는 맹세로 모든 보살이 국토를 정화하고 중생을 제도하고자 커다란 서원을 세웠으며, 일반적으로는 위에서 언급했던 사홍서원(四弘誓願)이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약사여래(藥師如來)에는 12원(願)이 있으며, https://bauhutte-g.com/kr-57 아미타여래에는 48원(願), 석가여래에는 500대원(大願)이 있습니다.
가장 존귀하고 그 이상 뛰어난 것이 없는 불도를 닦아 깨달음에 이르러 성불하겠다는 맹세이다. 고객님의 PC가 악성코드에 감염될 경우 시스템성능 저하,개인정보 유출등의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삼장교(三藏敎)와 통교(通敎)가 밝히는 사홍서원이라면 다만 유작사성제를 연하여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영락경》에 이르기를, ‘아직 고제를 건너지 못했으나 고제를 건너게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당신의 마음이 더욱 산란하게 만들고, 다르마(법)를 수행하기 위해 쓰여 질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만약 상황이 불가피하다면, 보살은 부도덕한 행위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합니다. 실질적으로 발현된 보리심이 결여되어 있다면, 부도덕한 행위를 공덕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위빠사나 수행자가 근본불교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자 할 때, 그것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가르치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죄악이 됩니다. 7) 증오, 나태함, 질투, 인색함, 원한, 무시함 때문에 다르마(불법)에 흥미를 느끼고 당신에게 오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는 행위.
그러나 만약 당신의 마음이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태라면, 다른 이들이 요청한다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잘한 일에 있어서라면 그들의 마음수준에 따라 여러 가지로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절바르게 행동하는 것으로서 그들을 즐겁게 하고, 다르마를 수행할 수 있도록 복돋워 줄 수도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수행자와 함께 거할 때 다른 이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편안함을 쫒아 드러눕게 된다면 이 항목의 맹세를 깨뜨리게 되는 것입니다.